위버, 에어비엔비 등으로 전세계적인 공유기업 열풍이 부는 가운데 우리나라에도 많은 공유기업이 생겼다. 서울시 지정 공유기업ㆍ단체만 80여곳이 있고, 그밖에도 많은 서비스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차량공유 서비스 외에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품앗이, 두레 등의 전통이 있고, 정情문화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공유경제가 크게 활성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시장이 작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 사회가 타인과 사회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독일은 미술 대학 입시 시험 과제를 집에서 해가기도 한다. 한국인은 당연히 묻는다. "집에서 해온 것을 그가 혼자서 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이런 질문에 독인인은 이렇게 반문했다고 한다. "아니 어떻게 시험을 치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


한국은 탈법에 매우 관대한 나라이다. 아이들 학교를 위해 주소를 이전하고, 세금 절감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한다. 이러한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은 미련하거나 고지식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절차적 정당성에 가장 투철해야 할 정당에서 투표를 조작하거나 대리하는 행위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에도 정부기관의 선거개입이 문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서로를 의심하고 믿지 않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는 한국인이 특별히 나쁜 국민성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역사와 사회 구조가 그런 것이다. 근대화를 통해 신뢰와 예의를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는 깨어졌으나, 법과 사회적 계약에 대한 의식이 아직은 약한 것이다. 이는 외부로부터, 위로부터의 빠른 근대화의 한계이다. 사실 서구유럽에서도 현재의 의식을 생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품앗이, 두레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과거 농촌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사실 많은 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살았다. 이웃집 물건을 내 물건처럼 빌려 쓰는 것이 당연했다. 이 같은 의식은 지금도 남아있다. 가까운 친구나 이웃 간에 물건을 빌려주거나 도와주는 것은 당연시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공동체에서 퇴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매우 주관적이다. 내가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확실히 믿고, 모르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 반면 오랜 근대화 과정을 거친 나라들에서는 관계가 아주 객관화되어 있다. 가깝다고 절대적으로 믿지 않고, 모른다고 의심부터 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이에도 계산이 확실하고 그것을 편하게 생각한다. 즉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자기 것과 남의 것을 정확히 구분하고 서로의 영역을 지켜준다.


공유경제는 상대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 내것을 남에게 빌려주는 것이고, 남의 것을 빌리는 것이다. 아는 사람 사이에는 그 관계에 대한 의식이 작동하고,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사회와 타인 일반에 대한 의식이 작동한다. "상대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에 따라 공유할 수 있는 것의 폭과 양이 결정된다.


따라서 특히 한국에서는 무작위 대중들 간에 P2P로 빌려주고 빌려받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의 공유기업들은 직접 공유물품을 서비스하던지, 전문적으로 빌려주는 사람들을 모으고 키우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사실상 기업형 공유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공유경제라기보다 대여/판매 서비스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 만으로도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환경 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진정한 공유경제라 부를 수는 없다.


이 글은 한국에서 공유경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다. 나는 이 돌파구가 서로 믿을 수 있는 '공동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관계에 있어 객관성보다 주관성이 강하다고 한다면 이 주관성을 이용한 공유경제를 만들고 넓혀 나갈 수 있다. 즉 '공동체형 공유경제'가 필요하다.


근대는 객관성의 시대였다. 근대화는 곧 객관화를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과학과 경제학은 수학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화폐를 통해 모든 것을 계량하며, 통계와 숫자를 근거로 정책을 결정하려 하였다. 분명히 객관화는 사회의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객관화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람들은 객관적인 이해관계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객관성과 주관성의 사이의 중용이 필요하다. 근대는 인간을 탈脫부족화-객관화 시켰지만, 전기에 의해 연결된 탈근대 사회에서 우리는 재再부족화-주관화 되고 있다.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전기에 의하여 우리는 작은 규모의 촌락에서처럼 인간 상호간의 깊은 관계를 어디에서든지 되찾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그리고 그에 적합한 미래형 경제, 자율적인 공유경제를 시작하기에 어쩌면 한국이 최적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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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  (2) 2017.02.03


경제가 어렵습니다. 돈이 돌지 않습니다. 일자리가 없습니다.

경제성장률은 바닥이고, 은행에 쌓여있는 돈은 300조가 넘는다고 합니다.


대선주자들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하고 있지만,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장기적으로는 인류의 발전일 수 있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기존의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을 뿌려서 일자리를 만들었던 과거의 재정정책은 더이상 먹히지 않습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창업을 권장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자본과 노동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시장경제를 넘어 구성원들 모두가 주체가 되는 공동체 경제, 

자율경제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저희는 경제를 움직이는 피와 같은 역할을 하는 '화폐'의 문제에 주목하였습니다.

시장경제를 위해 국가에서 발행하는 화폐는 공동체의 부를 외부로 이전시킵니다.

또한 모든 관계와 거래를 객관화시켜 구성원간의 유대를 해체시킵니다.

불황기에는 더욱 꼭꼭 잠겨 돌지 않으며, 국제적 투기수단이 되어 가치가 요동치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고있고, 밖으로 유출되지 않는 공동체 화폐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공동체화폐를 사용하면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던 개인들의 시간과 재능을 이웃과 나눌 수 있게 되어 

일자리 창출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도 공동체화폐(대안화폐)에 대한 실험이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자율적인 화폐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은 많은 수고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국가 화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공동체화폐는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어려운 점을 줄이기 위해 스마트폰을 이용한 공동체화폐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화폐공동체를 만들고, 편리하고 투명하게 공동체 화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직 초기 단계라 낯설고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이용자들과 함께 계속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나아가 화폐공동체들이 서로 교류하고 법정화폐도 적절한 비율로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공동체 화폐를 사용하는 공동체들이 많아질수록 사회가 더 건강해지고 안전해 질 것입니다.

더욱 이웃과 친구를 소중히 대하게 되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그만큼 더 자유로워 질 것입니다.

남는 시간과 재능을 사용하여 이웃과 나의 필요를 채우며 더 부유해 질 것입니다.


나누장과 함께 미래의 경제, 우리의 경제를 직접 만들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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